국산 SUV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아성에 좀처럼 균열이 나지 않는 가운데, 르노코리아가 조용히 판을 흔들었다. 2026년 3월 2주차 출고를 시작한 필랑트가 첫 달에만 4,920대를 판매하며 시장에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기간 르노코리아 내수 총판매 6,630대의 74%를 필랑트 단 한 모델이 채웠다. 사전 계약 7,000대를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나온 성과로, 브랜드 전체 실적을 혼자 견인한 셈이다.
싼타페와 팰리세이드 사이 정밀 조준
필랑트는 르노코리아가 공식적으로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로 분류한 모델이다. 전장 4,915mm로 싼타페(4,830mm)보다 길고, 팰리세이드(4,995mm)보다는 소폭 짧은 위치에 자리한다.
다만 전폭은 1,890mm로 싼타페(1,900mm)보다 오히려 좁아 “싼타페보다 크다”는 표현은 전장 기준에서만 유효하다. 전고 1,635mm, 휠베이스 2,820mm로 패밀리 SUV에 걸맞은 공간감을 확보했다.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점등되는 로장주 로고와 그릴 라이팅이다. 쿠페형 실루엣에 1.1㎡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가 전 트림 기본 적용되며, 실내에는 55인치 파노라마 스크린이 공간을 압도한다. 전 트림에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NC)도 기본 탑재돼 정숙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
E-테크 하이브리드 단일 파워트레인, 효율 극대화
필랑트는 1.5리터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150ps)과 100kW 전동기를 조합한 E-테크 하이브리드 단일 파워트레인만 제공한다. 합산 출력은 250마력이며, 3단 멀티모드 자동변속기와 전륜구동 조합으로 구성된다. AWD 옵션은 없다.
공인 복합연비는 15.1km/L로, 도심 주행의 최대 75%를 전기 동력으로 커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배터리 용량은 1.64kWh로 소용량이지만, 고빈도 회생제동과 3단 변속기 조합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주행 질감을 위해 주파수 감응형 댐퍼(SFD)를 적용했으며, 긴급 조향 보조(ESA)를 포함한 34종의 ADAS가 탑재된다. 차체 강성 확보를 위해 초고강도 핫 프레스 포밍 강판을 18% 적용했다.
브랜드 반등의 기회인가, 팀킬의 시작인가
가격은 친환경차 세제 혜택 기준 테크노 트림 4,331만 원부터 시작한다. 아이코닉 4,696만 원, 에스프리 알핀 4,971만 원, 1,955대 한정 에스프리 알핀 1955가 5,218만 원으로 라인업을 구성한다.
그러나 필랑트의 흥행 이면에는 우려도 존재한다. 브랜드 핵심 모델이었던 그랑 콜레오스의 3월 판매량이 1,271대로 전년 동월 대비 75.5% 급감했다. 필랑트 출시로 인한 ‘팀킬’ 현상이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2024년 흑자 전환의 발판이 됐던 그랑 콜레오스의 부진이 지속된다면, 필랑트의 성과가 브랜드 전체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2분기 실적과 그랑 콜레오스의 회복 여부가 르노코리아의 실질적 성장세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