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만 30억, 금 10억, 현금은 추정불가로 알려진 배우 전원주씨가, 택시 요금이 오르는 것에도 불안을 느껴 잘 타지 않는다고 전하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원주는 한 방송에 출연해 투자 노하우를 밝히기도 했는데, 수십억의 자산이 있지만 평소 아끼는 게 습관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에겐 엄청난 금액의 용돈을 주는 것으로 밝혀지자 많은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죠.
평범하지 않았던 전원주의 인생
한국전쟁으로 인해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란 1939년생 배우 전원주는 당시 억척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중등교사로 일하던 중, 배우의 꿈을 안고 성우로 데뷔하게 됩니다. 첫 출연료가 한 달에 1만 원이던 그녀는 28살의 나이에 어머니가 맺어준 첫 번째 남편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남편 때문에 말대꾸 조차 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결혼 3년 만에 남편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전원주는 첫 번째 남편와 사별로 아들을 둔 과부가 된 후, 두 번째 남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5만 원짜리 사글세를 지불하며 신혼살림을 시작했지만, 1972년 전원주가 성우 활동을 그만두고 배우로 전향한 뒤 형편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성우로 활동할 때는 항상 여주인공을 맡았지만, 배우로 전향한 이후에는 단역 역할에 그쳐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출연료만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두 번째 남편은 노는 것과 돈 쓰는 것만 좋아하며 생활력은 결코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를 보다못한 전원주의 친정 어머니가 악착같이 저축한 돈으로 주택과 건물을 구입하여 사위의 사업을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남편은 사업을 위해 파주로 갔다가 외도를 일삼으며 재산을 탕진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전원주는 ‘남편에게 술집, 다방, 식당에 각각 한 명씩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미 아이를 가진 여성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전원주의 친정 어머니가 사위의 멱살을 붙잡고 화를 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지만, 전원주는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남자한테 왜 그러냐”며 남편을 두둔했다고 합니다.
연예계 주식고수로 알려진 전원주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이 탕진한 재산을 만회하기 위해 억척스러운 워킹맘으로 변해야 했습니다. 이때 성씨가 다른 두 아들을 키우면서 오해를 받을까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덜 안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을 걱정하여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여섯 차례나 임신중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전원주가 집중한 것은 재산을 쌓기 위한 투자였습니다. 그녀는 가계부를 꼼꼼하게 관리하며 10원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돈을 모았습니다. 악착같이 저축하여 종잣돈 550만원으로 주식투자에 도전했고, 1987년에는 투자금액이 3천만원으로 불어나며 유명해졌습니다. 현재 원화 가치로 따지면, 그녀는 1500만원의 투자금액으로 1억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1998년 한 국제전화 CF에 출연하면서 벌어들인 5000만 원의 수익금을 주식 투자로 늘려 1억 8천만 원으로 불린 이후, ‘주식 투자의 고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이듬해에는 ‘짱 아줌마 전원주의 딱 열흘 만에 졸업하는 코스닥학교’라는 투자 가이드북을 발간하며 자신만의 주식 노하우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책에서는 ‘뇌동매매 마라’라는 충고가 현재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필수 투자 원칙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또한 “금리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되는 개별 중소형 주보다는 대형우량주 중심 투자를 해야 한다”는 투자 원칙을 제시하며, 금리를 기준으로한 투자판단, 확실하게 정해진 목표 수익 후 매도, 우량주 위주 투자 등의 방법을 추천하였습니다.
60살에 CF 계약으로 대박을 치고 30년간의 무명생활을 마무리한 전원주는 주식투자 수익과 방송 출연료 등을 합한 자금으로 1997년 IMF 파장 때에 저축으로 모은 돈을 활용해 조정장에 속한 상가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합리적인 소비 습관과 수급 분석 등 투자 능력을 활용하여 수십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자산 관리에 관한 강연자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전원주는 수많은 기업체에 강연을 다니며, 기업 분위기에 따라 투자 가능성을 감지해 나갔습니다. 한 인터뷰에서는 하이닉스 반도체에 강연을 간 적이 있는데, 회사 분위기를 살피고 ‘이 회사는 앞으로 잘 될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수익률이 60-70%까지 상승할 때 증권사 직원이 주식을 팔라고 권유했지만, 전원주는 차분히 기다리며 장기간 묻어둘 결심을 했습니다. 전원주가 하이닉스 주식을 매수한 평단가는 4500원 정도였으며, 이는 그의 대단한 안목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주식투자에서는 평균 수익률이 7~10%를 기준으로 이어가던 전원주는 자산의 안정성을 위해 채권 펀드를 선택했습니다. 또한, 투자 수익금으로 부동산에도 투자를 이어갔으며, IMF 당시 매입한 상가 건물은 2017년 기준 30억 원 이상의 시세를 기록했습니다. 노후된 건물을 동료배우와 함께 매입 후 수리하고 시작한 임대업 또한 성공적이었습니다.
며느리에겐 용돈 100만원
50년 동안 가계부를 철저히 정리하면서 ‘모으는 재미’를 즐기며 살아온 전원주는 “이제는 돈을 펑펑 쓰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모았습니다”라고 밝히며 재산상속에 대해 “나중에 한꺼번에 주는 것보다는 평소에 조금씩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와 며느리 모두가 좋은 대우를 받게 되니까요. 조금씩 주면 서로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니 다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는 나눠주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전원주의 두 며느리는 혼자 사는 시어머니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가져가는데, 전원주는 그들이 반찬을 받을 때마다 100만 원의 용돈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전원주는 “며느리가 나의 딸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보답은 해 주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덧붙여, “진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노년에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재산입니다”고 생각하며, “노년에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나무보다 착실하게 모았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자녀와 자녀의 배우자를 모두 차별 없이 키우면서, 두 며느리에게는 노동 대가로 용돈을 주는 넓은 마음씨는 오직 경제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생긴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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